📬 스타트업 5년→대학원→대기업 전직…커리어 고민은 끝났을까?

안녕하세요, 전직한 사람들을 취재하는 인터뷰 매거진 [전직해도 괜찮아] 입니다.

2025. 6. 10.

[ 전ː직 ] 직업이나 직무를 바꾸어 옮김

안녕하세요, 전직한 사람들을 취재하는 인터뷰 매거진 [전직해도 괜찮아] 입니다.

누군가는 반짝이는 호기심으로, 누군가는 절실한 의지로 시작했을 전직의 다양한 계기와 과정을 기록합니다. 살면서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직업의 갈림길 앞에서 고민 중인 분들에게 힌트가 되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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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이라는 단어 앞에서 보통 이직이나 퇴사를 떠올리지만, 누군가는 다시 ‘공부’를 선택합니다. 스타트업 마케터 5년차, 번아웃과 진로 고민 끝에 대학원에 진학해, 데이터 분석/기획자로 전직한 이서원님의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꽉 닫힌 해피엔딩처럼 보이는 이 여정은, 과연 서원님을 원하던 종착지에 데려다주었을까요?

흔히 대학원에 가면, 대기업에 입사하면 커리어가 ‘완성’될 거라 기대하기도 하죠. 하지만 그 길을 직접 걸어 본 서원님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새로운 공부를 해볼까 말까, 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고민 중이라면? 서원님의 인터뷰가 좋은 레퍼런스가 되어줄 거예요.

Chapter 1. 5년 경력 멈추고 다시 학생이 된 이유
Chapter 2. *MBA에서 배운 것들
Chapter 3. 대기업에 와도 커리어 고민은 끝나지 않아요
Chapter 4. 너무 비장하지 않게 움직이기

*MBA(Master of Business Administration) : 경영전문대학원의 경영학 석사 과정. 실무 중심 교육을 통해 기업의 관리자나 경영진 양성을 목표로 한다.

Chapter 1.

5년 경력 멈추고 다시 학생이 된 이유

Q. 일을 그만두고 다시 공부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서원 맛집 추천 스타트업에서 4년을 일했어요. 스타트업치고 꽤 오래 다닌 편이죠. 그러다 코로나 시기에 회사가 폐업 위기까지 갔었는데, 운 좋게 더 큰 기업에 인수되면서 10개월을 더 다녔어요. 하지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고, 개인적인 문제도 겹치면서 번아웃이 심하게 와서 퇴사하게 됐어요.

쉬면서 생각을 정리하다 보니, 한때 준비했던 대학원 진학에 대한 열정이 다시 떠오르더라고요. 이직 면접도 많이 보러 다녔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고요. 저에게 남은 선택은 대학원밖에 없었고, 운명처럼 느껴지는 타이밍이었어요.

흔히 ‘도피성 진학은 안 된다’고들 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회사를 그만두고 대학원을 가는 선택에 도피가 0%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그때의 제가 판단한 최선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스스로 책임지기로 한 거죠.

Q. 마케팅 일을 하셨는데, 데이터 분석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뭐였나요?

서원 마케터로 연차가 쌓이면서 ‘나만의 뾰족한 무기가 없다’는 것에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저보다 더 트렌드에 밝은, 어린 동료들은 계속 들어오니까요. 제가 특별한 스페셜티가 없는 제너럴리스트라고 느꼈고, 그게 싫었어요. 시키는 일은 다 해낼 수 있지만, ‘결국 나는 뭔가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사람 아닌가?’ 싶었죠.

그리고 일하면서 데이터팀에 뭔가를 요청하고 부탁하는 일이 많았거든요. 저도 SQL을 공부해봤지만, 실무까지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컸고요. 그래서 데이터 분석을 제대로 배워서 내 무기로 삼고, 커리어 전환을 하고 싶었어요.

인터뷰 중인 서원님 ⓒ전직해도괜찮아

Q. 학교를 알아볼 때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지를 좁혔고, 카이스트 MBA로 결정한 이유는 뭐였나요?

서원 ‘대준모(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라는 유명한 네이버 카페에서 정보를 많이 얻었어요. 애초에 취업을 위해 대학원에 간 거기 때문에, 졸업 후 나이까지 고려해서 1~2년 과정 위주로 알아봤죠. 2년제 석사 3곳과 1년제 카이스트 MBA를 지원해서 3곳에 합격했어요. 그 중 데이터 분석과 관련된 커리큘럼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카이스트를 선택하게 됐고요.

Q. 학비 부담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그 부분은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서원 한국장학재단에서 전액 학자금 대출을 받았어요. 학비가 1년에 약 4천만 원이었는데, 학자금 대출 제도가 생각보다 정말 잘 되어 있어요. 자격 조건도 후하고, 금리도 낮고요. 국가 제도를 잘 활용하면 누구나 충분히 도전 가능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Chapter 2.
MBA에서 배운 것들

Q. 공부는 어땠어요? 할만하던가요?

서원 1월 2일에 개강해서, 크리스마스 전주에 기말고사를 봤어요. 1년을 꽉 채우는 커리큘럼이었죠. MBA가 ‘네트워킹’ 위주라는 선입견도 있는데, 카이스트 MBA는 그렇지 않은 걸로 유명했어요. 2년 치를 1년에 몰아 듣는 과정이라 공부량이 엄청 많고, 과제도 매일 쏟아졌어요. 대신 논문은 안 써도 되고, ‘경영 자문 실습’이라는 기업 협업 프로젝트를 졸업 과제로 진행해요. 지도 교수님도 배정되고요. 전체적으로 실무 중심 과정이었어요.

눈물 날 만큼 힘들 때도 있었지만 덕분에 동기들과 엄청 친해져서, 마치 여고 시절로 돌아간 듯한 경험이었어요. 지금도 매주 만날 정도로 가까운 친구들을 얻은 게 큰 자산이에요.

Q. 학부 때의 공부와는 확실히 다른가요?

서원 마음가짐이 완전히 달라요. 내가 하고 싶어서, 내 돈 내고 자발적으로 다니는 거니까요. 학부 때는 학점 잘 나오는 과목을 골랐다면, 지금은 훨씬 자기 주도적으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실무에 도움이 될 만한 수업을 알아보거나, 내가 관심 있는 수학적 분석법을 배워본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대학원 졸업 발표 현장

Q. 수료 이후의 전직은 어땠어요? 이전보다 수월했나요?

서원 사실, MBA를 나온다 해서 취업 프리패스인건 아니에요. 졸업하고 6개월 동안 제가 75군데를 지원했으니까요. 그때는 멘탈이 많이 흔들렸고, 천주교 신자인데 신점도 보러 다녔어요(웃음).

그래도 서류 합격률이나 네트워킹 관점에서 학교의 네임벨류를 확실히 느끼긴 했어요. 1년짜리 MBA였지만 일반 석사 학위와 동일하게 쳐줘서 2년 경력을 인정받고 입사하기도 했고요.

Q.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계세요? MBA에서 배운 것들이 실무에 도움이 되나요?

서원 졸업 후 주로 데이터 분석 직무로 지원하면서 사전 과제들을 정말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걸 하면서 ‘아, 나는 분석가로서 매일 코딩만 하는 일은 안 맞겠다.’ 라는 걸 확실히 느꼈거든요. 그래서 데이터 분석가로 입사하진 않았고, 지금 회사에서의 첫 1년은 ‘데이터 기획자’ 역할에 가까웠어요. 고객 조사를 설계하고, 결과에서 인사이트를 도출하는 일을 했죠. 지금은 그걸 시각화하는 작업을 매니징하고 있고요.

과제를 하면서 다양한 비즈니스 맥락을 접했던 게 개발 외주사 관리나 보고서 작성에 은근히 도움이 돼요. 하지만 파이썬이나 머신러닝 같은 툴은 깊게 다루지 않기 때문에, 진짜 데이터 분석가가 되려면 이 과정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한 분야를 깊게 공부해 보고 싶다면 석사 과정을, 다양한 분야를 경험하고 사람들과 교류하고 싶다면 MBA를 추천드려요.

Q. 동기들은 주로 어떤 분야에서 일하고 있어요?

서원 저는 성향과 안 맞을 것 같아서 지원하지 않았지만, 제일 많이 진출하는 건 컨설팅 분야예요. 윗 기수 선배들 중에도 컨설팅하는 분들이 많아서 도움받을 수 있는 측면도 있었고요. 사업 기획, 전략 기획 직무로 간 분들도 많아요.

Q.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었지만, 생각처럼 되지는 않았다고 하셨어요. 지금의 생각은 어때요?

서원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었어요. 사실상 대학원에서도 제너럴한 공부를 했고, 지금도 저는 제너럴리스트거든요. 이쯤 되니 운명인가 싶어요(웃음). 전직을 준비하면서 저는 분석보다 다양한 기획을 하는 일이 더 잘 맞는다는 것도 깨달았고요. 지금은 오히려 넓게 다룰 줄 아는 역량이 제 강점이라고 생각해요.

체육대회날 동기들과 함께

Chapter 3.

대기업에 와도 커리어 고민은 끝나지 않아요

Q. 스타트업에서 시작해 전통의 대기업으로 옮기셨는데요. 각 조직의 장단점을 비교해 주신다면요?
서원 스타트업은 아무래도 주도성과 자율성이 높다 보니,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효능감을 더 많이 느낄 수 있는 구조였어요. 대기업은 일 자체가 재밌다기보다는 안정성이나 연봉, 복지 같은 외부 요인에서 오는 만족감이 더 큰 편이고요.

그리고 업무 프로세스나 의사결정 구조가 확실히 다르죠. 대기업은 결제 라인이 복잡하기 때문에, 상부에서 정해준 일을 그대로 따라야 하거나 ‘보고를 위한 보고’ 같은 게 많아요. 재미보다는 안정성에 무게를 두고 다니는 편이죠.

Q. 그런 부분이 불만족스럽진 않나요?
서원 주기적으로 만족과 불만족의 사이클이 있어요. ‘내가 이걸 왜 하고 있지?’ 싶다가도, 인센티브가 나오거나 일이 잠잠해지면 또 마음이 달래지거든요. 그런 식으로 계속 스스로를 설득하며 다니는 거죠. 장점도 분명 많으니까,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무언가는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도 일의 재미보다는 안정성을 강하게 추구하시는 분들이 만족하고 다니시는 편이에요.

그래서 대기업에 와도 커리어 고민은 끝나지 않더라고요. 아직까지 여기를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여전히 회사에서 더 재밌는 일을 해보고 싶고, 자아실현도 하고 싶다는 욕구가 남아 있어요. 근데 또 어떤 사람들은 “자아실현은 회사 밖에서 하는 거다”라고 하잖아요. 그 말도 이해가 돼요. 저도 그 안에서 계속 마음이 왔다 갔다 해요.

Q. 신입 공채가 아니라 경력직으로 입사했는데, 그런 면에서 특별히 어려움이나 차이를 느낀 적은 없었나요?
서원 요즘은 신입을 잘 안 뽑기도 하고 경력직 입사 비중이 높아져서, 공채가 아니라서 어려운 점은 거의 없었어요. 특히 저희 부서는 연구소이다 보니 석사 이상 비율이 높고, 다양한 배경의 분들이 많아서 더 그런 것 같아요. 결국 어디서든 중요한 건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고, 분위기에 따라 일의 만족도도 많이 좌우된다고 느껴요. 일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느낀 건 없었어요.

졸업식 기념사진

Chapter 4.

너무 비장하지 않게 움직이기

Q.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분들께, 지금 시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서원 고민하는 지금이 제일 어리니까, 해보고 싶다면 한 번 도전해 봤으면 좋겠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고민하고 있다면 학자금 대출 제도를 꼭 알아보시길 추천드리고요. 현실적인 고민도 당연히 필요하지만, 당장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지금이 가장 빠른 시기라고 생각해요. 완벽한 확신은 없어도 괜찮아요.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걸 믿고 한번 해보길 바라요.

저는 각오가 비장해질수록, 너무 많은 계획을 세울수록 오히려 시작도 결과도 안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비장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MBA 진학도, 대기업 입사도 제가 모든 걸 계획해서 이루어낸 게 아니거든요. 우연히 여러 타이밍이 맞았을 때 “그냥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게 여기까지 온 거예요.

비교와 판단은 필요하지만, 결국엔 지금 내가 하고 싶은 것, 가장 열망이 큰 것에 집중해서 도전해 보길 바라요.

Q. 서원님은 배우고 싶은 분야가 명확했잖아요. 그런데 만약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만 있다면 어떨까요?
서원 사실 그런 막연한 수준의 기대라면, 저는 추천하지 않아요. 자기가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명확해야 해요. 왜냐하면 대학원에 간다고 그 답을 찾을 수는 없거든요.

저는 ‘이걸 배우고 싶다’는 확신을 가지고 갔는데도 막상 기대보다는 얻은 게 적었어요. 하고 싶어서 간다 해도, 실망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는 뜻이에요. 그럼에도 진짜 자신의 열망으로 도전한 거라면, 그 안에서 또 어떻게든 길이 만들어져요. 그러니까 애매한 기대감으로 긴 시간을 투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Q. 앞으로 또 다른 일에 도전하게 된다면, 어떤 기준을 가장 중요하게 둘 것 같나요?
서원 지금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서비스를 다루는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는 버킷리스트가 생겼어요. 콘텐츠를 워낙 좋아해서, 지금 하는 데이터 기획이나 리서치 일을 미디어 업계에서 해보고 싶어요. 안정성과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게 이상적인 바람일 수 있지만, 아직은 그런 도전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아직 젊으니까, 은퇴할 때까지 회사를 한두 군데는 더 다녀볼 수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