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를 낳고 퇴사, 다시 일하다 둘째를 낳고 또 퇴사. 결혼과 출산, 육아 속에서 두 번의 커리어 쉼표를 찍었던 천희원 님은, 경력 3년의 마흔을 앞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문법을 좋아하던 중학생은 이제 문장을 다듬는 어문교열사가 되었습니다. “우리 엄마는 책 고치는 사람이야”라는 아이의 말을 듣는 순간, 지금 내가 일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되셨다고 해요.

‘엄마’라는 이름에만 머물지 않고 다시 ‘나’로서의 일을 찾기까지.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은 희원님의 전직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혹시 지금, 긴 공백기나 경력 단절로 다시 시작하기 두려운가요? 희원님의 인터뷰에서 조용한 용기와 단단한 위로를 얻어보세요.

Chapter 1.

'엄마'가 되며 찾아온 커리어의 쉼표

희원  계획에 없던 일이었어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임신 소식을 듣게 됐거든요. 그때는 다니던 직장이 너무 힘들어서, 핑계 삼아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주변에서 육아를 도와주실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초반에는 육아 효능감이 굉장히 컸어요. 일에 대한 생각이 많이 안 날 정도로요. 아이를 돌보면서 마음도 많이 회복됐죠. 아이가 커가는 모습을 보는 게 보람차고 가치 있다고 느꼈어요. ‘나는 좋은 엄마구나’라는 자긍심도 생겼고요.

그런데 한 명의 월급으로 가계를 꾸리려니, 어느 순간부터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남편은 계속 커리어를 이어가는데, 저는 밥만 축내는 사람처럼 느껴졌어요. 옷도 제일 싼 걸 고르고, 커피도 아메리카노만 마시게 되고요. ‘한 달에 단돈 20만 원이라도 내가 벌어서 쓰고 싶다’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자마자 다시 일을 찾아 나섰죠. 큰 아이 두 돌이 되기 전에 재취업을 했는데, 예상치 못하게 둘째가 생기면서 또 일을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요. 곧이어 코로나가 터지면서 쉬는 기간이 더 길어졌고요.

희원  보통 인맥으로 알음알음 일감이 연결되더라고요. 저는 새로 시작한 입장이다보니 쉽진 않았죠. 출판사나 신문사에서는 내부 인력이 교정교열을 보는 경우도 많고요.

그래서 처음에는 경험을 쌓기 위해 출판사 대외활동을 여러 개 참여했어요. 그 중 '투래빗 출판사'와 인연이 이어져 처음으로 페이를 받고 정식 일을 맡게 됐죠. 인연은 언제 어디서 올지 모르더라고요. 적극적으로 나를 알리는게 중요한 것 같아요.

희원  문법을 워낙 좋아해서, 규칙에 맞춰 퍼즐처럼 글을 다듬는 게 재밌어요. 문장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한 의견을 주고 받는 과정도 좋고요. 제가 교정한 책이 실제로 출간되고, 제 의견이 반영된 걸 볼 때 가장 뿌듯하고 짜릿해요.

시간 활용이 자유롭고,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점도 제게는 큰 장점인데요. 반대로 그래서 힘들기도 해요. 집에 있다 보면 집안일과 육아를 병행하게 되서, 일에 온전히 집중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희원  예전에는 내가 가장 중요했어요. 재미있게 하면서 돈도 벌 수 있는 일이 하고 싶었죠. 작게나마 야망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엄마’로서 아이들에게 일하는 제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커요.

아이 친구들이 집에 놀러오면, 제 이름이 판권에 적힌 책을 꺼내서 “우리 엄마 책 고치는 일 해”라고 자랑하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기쁘고 뿌듯했어요. 엄마의 역할이 집안일에만 국한되는게 아니라, 아빠처럼 돈도 벌고,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어서 좋아요.

저는 엄마에게도 한 개인으로서의 삶이 있다는 걸 늦게서야 생각하게 됐거든요. 아이들에게는 그걸 더 빨리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그동안 만나온 인터뷰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강한 집념이나 뜨거운 에너지로, 하고 싶은 일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이었죠. 무의식적으로 저도 모르게, 희원님에게서도 그런 면모를 끌어내려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익숙한 성공 서사나 뚜렷한 야망을 가진 이야기를 기대하면서요.

그런데 인터뷰를 마치고, 작고 무해한 이야기에도 고유한 울림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희원님의 이야기는 잔잔하지만 단단했고, 특히 ‘엄마’라는 역할을 통해 일이 어떤 의미로 변화하는지 상상하게 했어요.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은 사람을 강해지게 만드는구나, 싶었죠.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나에게 맞는 일, 도전해보고 싶은 일을 놓지 않고 이어가는 삶.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귀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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